라틴댄스/살사 tips (scrap)

[스크랩] 어느 운영진의 하루 (2)

춤추는 포스 2016. 11. 24. 17:39




“에델. 배고프지? 우리 가자.”

“네. 오빠.”

 

에델은 갑자기 내 팔짱을 꼈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이곳은 스킨십이 많은 곳이라 팔짱을 끼는 정도는 일상다반사다.

 

“어. 에델. 브로이 오빠는 네 꺼 아니라고,”

“피이. 너도 부러우면 끼던가?”

“내가 못할 줄 알고?”

 

신입회원 바네사도 어느 틈엔가 내 나머지 팔에 자신의 팔을 걸쳤다. 예전 같으면 기분 좋을 일이지만, 지금은 그저 덤덤할 뿐이다. 물론 그렇다고 싫은 건 아니다.

 

식당에서 최대한 신입들을 지루하지 않게 해주기 위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이럴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참 힘들다. 원래 나는 그다지 재밌는 사람이 아니다. 말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고, 생각하거나 책 읽는 걸 더 선호한다. 물론 동호회 운영진을 하면서 인간관계에 대해 배우는 게 많지만. 좋은 것 보단 나쁜 상황이 닥칠 때가 더욱 많아 힘들다.

 

식사를 마치고 살사바로 돌아오니 어느새 저녁 7시가 넘어있었다. DJ박스에선 살사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얼른 살사화로 갈아 신고 거울 앞에 섰다.

 

떼베이직을 밟기 위해서였다. 신입회원은 아직 살사에 익숙하지 않아 춤을 별로 추지 못한다. 그래서 처음 1시간 정도는 다함께 베이직을 밟는다. 보통 4주-5주 정도는 이렇게 해줘야 조금이라도 살사에 흥미를 느낄 수 있다.

 

연달아서 30분 정도 밟으니 힘이 들었다. 대삽형이 오더니 내 어깨를 툭 지고는 씨익 웃었다. 그때서야 신입 회원을 한명씩 잡고 홀딩하기 시작했다. 예전엔 주말마다 정모에 오는 것이 즐거웠다. 지금은 별로 그렇지 않다.

 

재밌게 춤춰본 게 언제인지 잘 기억이 안 난다. 아직 베이직에 익숙하지 않은 신입들을 의무적으로 잡으면서 ‘재미’가 사라졌다. 물론 얼굴은 웃고 있지만, 라이트턴도 제대로 못 도는 이들과 무슨 재미를 느끼겠는가?

 

잘 추는 고수 형들은 초보들과 잡아도 재밌다고 하지만, 나는 운영진인 탓에 정모 때는 온통 초보만 잡다가 시간을 다 보낸다. 게다가 골고루 잡아줘야 한다. 한두명 한테 한 두번이라도 더 잡아주면 당장 질투어린 항의가 들어온다.

 

아직 잘 추지 못하는 탓에 춤출 기회가 많지 않은 탓이다. 동호회 선후배란 인연 탓일까? 그녀들은 나이를 무색하게 어린아이처럼 칭얼거리고 투덜댄다. 동호회 신입 여성회원들을 관리해야 하는 나로서는 최대한 공평하게 행동해야 한다. 마치 여고에 갓 부임한 교생처럼.

 

땀을 뻘뻘 흘리며 홀딩을 한지 몇 시간. 잠시 앉아 쉬는데 에델이 다가왔다.

“?”

“힘드시죠? 이거 드세요.”

 

에델은 수줍게 음료수를 내밀었다.

 

“고마워.”

 

나는 빙긋 웃으며 받아들었다. 목이 타는데다 별로 비싼 게 아니기에 편하게 받았다. 가끔은 이런 보너스도 있어줘야 운영진하는 맛이 난다.

“?”

음료수를 마시는데, 그녀는 웃으면서 물끄러미 나만 쳐다보고 있었다.

 

“왜?”

“오빠. 음료수값 주셔야죠?”

“무슨 말이야. 에델이 먹으라고 준거잖아?”

“먹으라고 그냥 덥썩 먹어요?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요.”

“어떡하지? 이미 음료수는 내가 따서 이만큼 마셨으니...”

나는 벌써 반이나 들이킨 음료수병을 살짝 흔들며 물었다. 에델이 한층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홀딩해줘요.”

“또?”

“네. 음료수값은 해줘야죠.”

“알았다. 알았어.”

 

나는 선선히 응락했다. 오늘은 다른 때와 달리 신입들이 좀 적게 나왔다. 덕분에 벌써 세 바퀴나 돌아가며 다 춰줬다. 에델하고 한번 더 춘다고 질투어린 항의가 들어올 것 같진 않았다.

 

음악이 바뀌자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에델의 빛나는 눈이 나의 눈과 마주쳤다. 그녀는 결코 시선을 떼려하지 않았다. 마주보는 내가 민망할 지경이다.

 

에델과 어떻게 춤을 마무리 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그녀와의 홀딩이 그날의 마지막이 되었다. 어느덧 시간은 밤 10시가 넘어있었다. 재빨리 신발을 갈아 신고 신입들을 인솔해서 뒷풀이 장소로 인도했다. 신입회원이 동호회에 오래 나오는 것은 뒷풀이가 좌우한다.

 

뒷풀이에서 재미를 느낀 신입은 최소 4-6개월 이상은 꾸준히 나온다. 물론 살사 모임이라 기본적으로 살사에 재미를 느껴야 하지만, 그 외에 동호회적인 재미도 있어야 한다. 춤이란 게 하루 아침에 확 느는 게 아니기 때문에, 꾸준히 나오려면 결국 인간관계가 제일 중요하다.

 

“여자는 남자와 달리 빨리 빨리 늘어. 그러니까 조금 안된다고 위축되지 말고 번개랑 정모에 자주 나와. 내가 책임지고 부킹시켜줄게.”

“부킹만 시켜주지 말고 오빠가 홀딩해줘요.”

“나야 당연한 거고. 옵션이야기지.”

 

나는 웃으며 말했다. 이런 말할 때마다 내가 무슨 나이트 삐끼가 되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동호회 선배나 잘 추는 사람과 춤 출수 있게 해주는 걸 소위 ‘부킹’이라고 한다. 하긴 즉석만남과 다른 게 있다면, 춤춘다는 것 뿐 결국 남녀가 만나서 ‘뭔가’를 한다는 건 같았다. 게다가 여긴 스킨십이 일어나는 곳이니까 어떤 의미에선 더한 셈이다.

 

여기서 신입회원들과 이야기 하다보면, 조금 심하게 말해서 내가 시중드는 사람이 되는 기분이다. 이 친구들은 내가 애인이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데이트를 하자고 조른다. 영화를 보자거나 밥을 먹자는 건 기본이다. 그때마다 나는 보호망을 두른다.

 

“오빠. 이번에 나온 <쇼파 홀릭> 재밌대. 보러 가지 않을래요?”

“그럴까? 그럼 내일 저녁때 시간 되는 사람?”

“나.”

“나도 괜찮아.”

 

몇 명이 금세 손을 든다. 여러 명이 함께 만나는 게 안전하다. 신입 여성회원이랑 영화 번개를 치면 운영진에서 몇 명이 붙고, 기존 회원 중에서도 몇 명이 따라온다. 나 혼자서 모두를 책임(?)질 필요가 없기 때문에 좀 더 편한 영화 감상이 가능하다.

 

“나 오빠가 좋아요.”

“별말씀을. 나도 다혜가 좋아.”

“정말 나 오빠가 좋다니까. 우리 데이트 안할래요?”

“나야 좋지.”

“다혜. 브로이 오빠는 너 혼자만의 소유가 아니라고.”

“무슨 소리. 오빤 내가 먼저 찜했어.”

 

다혜랑 몇 명이서 나를 양쪽에서 잡고 옥신각신했다. 처음 당할 때는 기분 좋은 일이었지만, 지금은 조금 짜증이 났다. 그들은 나를 무슨 물건 다루듯 한다. 저러다 몇 달 지나면 다른 이들에게 관심이 옮겨간다. 나는 그저 그들이 맨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되는 대상에 불과하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새벽 1시가 넘었다. 에델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데려다 주기 위해 일어났다. 운영진은 뒷풀이 자리에 끝까지 누군가는 남아있어야 했다. 동호회 뒷풀이란 게 술을 함께 하는 자리다보니 이런 저런 사고가 생기기 쉬웠다. 운영진이 있으면 뒷수습이 확실하게 되지만, 없을 때는 의외의 사고가 터지기 쉽다.

 

오늘은 몇 명이 바빠 먼저 자리를 뜬 탓에 나와 대삽형 그리고 꽃사슴이 남아 지키고 있었다. 어느새 인원은 20명 정도로 줄어들었다. 처음에 60명이 넘게 왔으니, 많이 줄어든 거다. 원래는 새벽 3-4시까지 있는데, 오늘은 다들 공교롭게도 일찍 자리를 떴다.

 

“날씨가 생각보다 덥네. 괜찮아?”

“네에.”

 

에델은 예쁘게 웃으며 답했다. 그녀가 너무 뚤어져라 나를 응시해서 민망한 탓에 아무 말이나 지껄였다. 오늘따라 왜 이리 택시가 안 잡히는지.

 

“택시!”

 

주말에 압구정에서 택시를 잡기한 참 쉽지 않은 일이다. 하긴 여긴 환락의 도시니까. 결국 어찌어찌 한 대를 잡았다.

 

“잘 들어가고. 담주에 보자.”

“무슨 소리야. 오빠 내일 영화보자며.”

“아. 그랬지. 내 정신. 그래. 그럼 이따 다 같이 보자.”

“피이. 바보.”

 

에델은 갑자기 혀를 내밀면서 문을 닫았다. 귀여웠다. 뭐랄까? 있지도 않은 여동생이 생긴 기분이었다.

 

그녀를 보내고 다시 뒷풀이 장소로 돌아왔다. 대삽형이 피곤한지 한쪽 구석에 앉아 담배를 피고 있었다.

 

“한대 필래?”

 

나는 고개를 저었다.

 

“금연 중이에요.”

“이번엔 얼마나 가나 보자.”

 

대삽형은 실실 웃으며 내기하자는 투로 약간 빈정댔다. 그렇지만 이번엔 정말 끊을 참이다. 돈도 돈이지만, 요새 위가 자꾸 쓰렸다. 술담배를 줄이며 아무래도 나아질 것 같아 독하게 밀어붙일 참이다.

 

“에델. 괜찮지 않니?”

“예. 귀여워요. 착하고.”

“왜 몸매도 저 정도면 착하잖아?”

“그렇죠.”

 

나는 웃는 얼굴로 대꾸했다.

 

“이제 예전 일은 잊고 한번 다른 여자를 사귀어볼 생각은 없는 거냐?”

“형. 그 일은 그만 끄집어 주세요. 잊고 싶네요.”

“알았다. 미안하다.”

 

대삽형은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껐다.

 

“에델. 노리는 애들 많은 것 같더라.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 안될려면 서둘러라.”

 

그렇게 툭 내뱉고는 다시 왁자지껄한 술자리로 들어갔다. 분위기 메이커가 돌아오자, 다시 그 술자리는 더욱 활기차졌다.

 

신입들은 처음엔 친절하게 잡아주는 남녀신입관리에게 호감을 갖기 쉽다. 특히 여자신입은 운영진에 대한 호감도가 높았다. 그러나 그건 한순간이다. 길어봐야 몇 개월 가지 않는다. 춤에 욕심이 많은 이들은 더 잘 추는 이들에게 향하고, 춤에 관심이 없는 이들은 모임에 발표회가 끝나면 더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남아있는 이들도, 신입관리들은 새로 들어오는 루키에게 더욱 신경을 쓴다는 사실을 맞닥뜨리면 실망해서 이내 포기한다. 나의 임무는 신입을 챙기는 거다. 어차피 그들의 관심은 잠시 나에게 향하는 거다. 그들의 관심은 금방 움직이거나 사라진다. 원래 그런 거다.

 

새벽 3시가 넘어 집에 돌아왔다. 집안이 온통 어두컴컴하다. 조용히 내방으로 들어와 샤워하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이때쯤 되어야 마음이 편안해진다. 주말엔 항상 무슨 사건사고가 터지지나 않을지 마음을 졸이게 되기 일쑤다. 다행히 오늘은 별 사건 없이 조용히 마무리 되었다. 다행이다.



출처 : 살사, 한곡 추실까요?
글쓴이 : 朱雀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