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포스
[스크랩] 어느 운영진의 하루 (1) 본문
브로이군은 시끄럽게 울어대는 자명종 소리에 눈을 떴다. 시간이 보니 벌써 오전 10시. 새벽 2시쯤 잔 것 같으니 수면은 충분히 취한 셈이다. 그러나 몸은 여기저기 뻑쩍지근하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의 강행군 덕분이다. 마음같아서는 하루 종일 집에서 쉬고 싶지만 1시쯤 나가봐야 한다. 오늘은 동호회 정모가 있는 날이다.
물먹은 솜마냥 무거운 몸을 일으키곤 세면대에서 찬물을 틀어 얼굴에 묻혔다. 상쾌한 시원함이 안면을 두드린다. 브로이는 어느 요일보다 토요일이 무겁고 긴장되었다. 동호회 운영진을 시작한 이래로 하루도 마음이 편한 날이 없었다.
처음 대표시삽 형이 운영진을 제의했을 때는 그저 단순히 “돕겠다‘라는 생각 뿐이었다. 그러나 막상 운영진이 되고 동호회 일에 참석하고 보니 알지 않아도 될 것을 자꾸만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정이 떨어지는 게 싫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대충 늦은 아침을 챙겨먹고 몸단장을 하곤 지하철로 압구정까지 이동했다. 2시부터 회의지만 여전히 시간에 맞춰오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오늘도 변함없이 브로이가 일등이었다.
“휴우.”
한숨을 가볍게 내쉰 브로이는 휴대폰을 꺼내 대삽형에게 걸었다. 금방 받았다.
“형. 어디야? 다들 안 오잖아? 씨잉,”
“미안. 미안. 차가 막혀서 말이야. 최대한 빨리 갈게.”
브로이는 입으론 툴툴 거렸지만 대삽형과는 매우 친한 사이였다. 무엇보다 화통하고 저돌적인 행동력이 마음에 들었다. 살사계 사람들이 이빨만 세고 행동력이 지지부진한 경우를 너무 많이 보다보니 그런 점이 높이 평가되었다. 무엇보다 편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상대라 좋았다.
약속시간을 30분이 넘기자 운영진이 하나둘씩 찾아들었다. 총무 꽃사슴은 넉넉한 웃음을 지으며 커피와 빵을 주문했고, 남자신입관리인 지니와 달리는 <꽃보다 남자> 이야기를 하며 “우리 준표씨”를 입에 달고 있었다.
“자자! 잡담은 조금 이따 하고 2주 후부터 신입회원 모집하는 거 알지? 다들 웹으로 만든 모집요강은 여기저기 붙인 거야?”
대삽의 말에 갑자기 모두들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한 사람은 나와 대삽형 밖엔 없었다. 다음 까페에 기반을 둔 우리 동호회는 두달에 한번꼴로 신입 회원을 받았다. 기존 회원들이 피라미드식으로 친한 사람들을 자주 데리고 와 다른 동호회에 비해 신입 모집이 수월하긴 했지만, 그래도 다른 동호회 까페와 사이트를 방문해 광고글을 올리는 것도 무시할 순 없었다.
“다들 바쁘고 힘든 건 아는데, 각자 자기가 맡은 동호회들은 책임지고 좀 올려줘. 신입이 들어오지 않는 동호회는 망한다고. 알지?”
“네!”
모두들 소리 높여 대답했다. 잠시 얼었던 분위기가 다시금 활기차졌다.
“그나저나 그 40대 아저씨 어떻게 해봐요. 맨날 여기저기 전화한대요?”
“응. 무슨 말이야?”
꽃사슴이 입을 열자 다들 관심을 보였다. 사정을 아는 나와 대삽형은 어색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수요번개랑 정모 나올 때마다 루키 20기와 친한 살세라들한테 전화해서 나오냐고 묻는데. 뭐 작업하는 게 아니라 춤 출려고 그러는 건 이해하지만 이건 좀 그렇지 않아?”
“좀 그러네.”
“게다가 그 분의 문제점은 한번 홀딩하면 한두번이 아니라 심할 때는 무려 다섯 번이나 잡는데. 애들도 한두번이지 그 잘 추지 못하는 분이랑 한번에 다섯 번 이상 홀딩한다고 생각해봐. 끔찍하다고.”
꽃사슴의 말에 다들 의외의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분은 누구를 보면 인사하시고 항상 밝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예의바르고 상냥한 분이라 생각되기 때문에, 그런 식의 행동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해가 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살사판에서 40대나 되는 분이 20-30대 여성과 홀딩하려면 아무래도 이것저것 어려움이 많은 편이다. 동호회에서 나름 편한 이들에게 연락하는 것도 방법중의 하나지만, 문제는 지나치다는 거다. 다들 자기 시간 쪼개 즐기려 나오는 건데 그런 식으로 행동하면 누가 좋아하겠는가?
“알았어. 오늘 모임에 나오면 내가 뭐라고 이야기할게.”
대삽형이 웃으면서 나섰다. 확실히 믿음직스럽다. 내가 대삽이 아닌 게 천만다행이다. 남에게 싫은 소리하는 건 끔찍한 일이다. 전에 우리 동호회 살세라에게 직접대는 똥파리 녀석을 형이 뒷덜미를 잡아 밖으로 내팽개친 일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다들 예의 바르지만, 이런저런 사람들이 살사바에 오니 별별 일이 다 생긴다. 그때마다 대삽형은 ‘해결사’ 역할을 확실히 했다. 우리 동호회가 1년도 안돼 100여명이 넘는 대형동호회로 성장한 데는 그런 형의 공이 컸다.
“그건 그렇고 요새 비비디랑 케이군이랑 사귀는 거 같지 않냐?”
“그 녀석 또 신입 꼬신 거에요?”
“어설픈 바람둥이 같으니라고.”
케이는 우리 동호회의 골칫덩어리다. 6개월 전에 우리 동호회에 뿌리를 내린 살세로인데, 마음에 드는 여성만 생기면 작업을 한다. 남녀가 모이는 곳이는 연애를 하는 것에 대해 뭐라고 할 순 없지만. 문제는 스토커적인 기질이 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영화를 보자고 접근해선, 나중에 비싼 뮤지컬이나 공연 티켓을 덥석 주면서 만나자고 한다.
처음 한두번은 편하게 만나던 여성은 그 순간부터 갑작스런 고민에 빠진다. 생각해봐라! 표값이 무려 10만원이 넘는 티켓을 주면서 보자고 하면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따라갈 여성은 얼마 안된다. “불편하다”라고 그쪽에서 거절하면 녀석은 귀찮게 꼬치꼬치 캐묻는다. 그럼 당연히 그 신입은 케이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정모에 잘 나오지 않게 된다.
웬만큼 춤추는 살세로가 귀한 살사판인 만큼, 여태까지 참고 있지만 녀석 때문에 동호회에 나오지 않는 여성이 벌써 세명째다. 뭔가 조치가 필요한 시기긴 하다. 모두의 시선이 다시 대삽형에게 향했다.
“알았다. 알았어. 내가 이야기할게.”
대삽형은 인상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그 말을 듣자 모두 안심한 듯 다시 이런 저런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러고 보니 브로이 이번 신입들도 너한테 관심 있는 애들이 많은 것 같던데...어때 이 참에 한번 사귀어 보는 게?”
“맞다. 에델인가? 그 애 참 귀엽던데. 관심 없어?”
꽃사슴과 지니가 개구쟁이같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나는 일단 웃었다.
“뭐 늘 그렇듯이 그냥 스쳐지나가는 관심이겠지. 내가 뭐 볼게 있나?”
“이봐! 젊은이.”
꽃사슴이 내 어깨를 잡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젊을 때 즐기라고. 그런 식으로 오는 여자 잡지 않다간 평생 여자 안 생긴다.”
나도 남잔데 여자한테 관심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동호회 일을 보면서 사귀는 건 포기했다. 아니 동호회의 무성한 뒷말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나야 뭐 그닥 인기있는 살세로가 아닌 탓에 그럴 일은 없지만, 에델은 꽤 예쁜 탓에 선배들 사이에서 인기가 제법 있었다. 보나마나 곧 물밑작업이 거셀 텐데, 거기에 끼고 싶지 않다.
거기에 끼어들어봤자 돌아오는 건 시끄러운 소문뿐이다. 게다가 만나고 싶어도 일과시간은 직장에서 보내고 나머지 시간은 동호회 일을 보느라 소진하는 나로선 데이트할 시간도 없다. 주말은 살사바에서 지내는 데 어떤 여자가 좋아하겠는가? 그나마 일요일도 만약 누군가가 번개를 치거나 신입회원들이 모임을 가지면 가봐야 한다. 운영진을 하면서 내 시간이란 건 옛날에 사라져 버렸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 벌써 4시가 지났다. 루키 수업에 참석하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아직 시작하려면 20분 정도 남았는데, 벌써 몇 명이 도착해 있었다.
“오셨어요? 브로이 선배?”
“응. 왔구나. 에델.”
“선배. 우리도 있어요.”
“응. 알아. 모두들 반가워.”
대학을 졸업한 이후로 이렇게 선배로 불리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대학때도 별로 해보지 않은 동호회 생활을 이곳에서 확실하게 하고 있다. 게다가 여긴 남녀 비율이 1:3인 곳. 예쁜 여자들도 많이 오는 편이라 눈은 즐겁다. 그리고 홀딩한 기회도 많으니 무작정 행복하다...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그냥 회원으로 동호회를 오면 즐거울지 몰라도 신입회원관리라는 직함을 다는 순간부터 즐거움은 의무와 책임으로 바뀐다. 1시간 남짓한 강습 시간동안 뒤에서 지켜보았다. 뒤에서 자리를 잡아 강사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 이들은 좀 더 앞자리로 옮겨주고, 패턴 수업때는 들어가서 살세라들을 잡아 주었다. 강습이 끝나곤 모두들 식사하게끔 근처 식당으로 이동했다.
“오빠. 우린 배가 안 고파서 근처 까페에서 커피 마시고 올께요.”
“응. 알았어. 대신 이따 정모에 빠지면 안돼. 알지?”
“네. 걱정마세요. 꼭 올게요.”
“안오면 2주간 홀딩 안해줄거야!”
“안돼요!”
“그러니까 꼭 오라고!”
“네.”
신입 회원 두명이 내 팔을 잡고 이야기 하다 밖으로 나갔다. 뒤돌아보니 에델이 뭔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가 나와 마주치자 곧장 지웠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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